(사진=미션투데이DB)

주일성수와 예배에 대하여 교계에 논란이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방역과 예방에 최선을 다한 후, 예배는 드려져야 한다.

다중이 모이면 감염자가 있을 확률이 높아지며 혹여 확진판정을 받기 전인 보균자로 인해 2차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사안이다. 이러한 우려는 이미 신천지의 사례를 통해 입증됐다. 즉 예배를 통한 대량 감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배를 통한 대량감염. 이러한 이유로 예배를 중지하는 것이 사회적 배려이고 책임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한국을 강타해도 우리는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공무원들과 의료진들이 불철주야로 수고하듯이 각자의 국민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건설현장과 생산 공장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회사원들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이면 재택근무를, 그리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은 주일예배를 위하여 일주일을 준비하고 그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삶의 전체이고 존재의 이유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한국과 세계를 강타하여도 각인은 각자의 업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감염을 방지하고 예방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예배를 드리기로 한 교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열감지기를 구입하자. 그리고 몸의 컨디션 상태가 약간이라도 이상이 있다고 느끼는 성도, 외출이 잦은 성도, 노약자 등은 가정예배를 드리도록 하자. 그리고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반드시 마스크와 손소독을 필수로 하는 것이 좋겠다.

구약의 레위기에서 지혜를 배우자. “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4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둘 것이며 5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가 보기에 그 환부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이레 동안을 가두어둘 것이며 6 이레 만에 제사장이 또 진찰할지니 그 환부가 엷어졌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피부병이라 제사장이 그를 정하다 할 것이요 그의 옷을 빨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레위기13:2~6)

피부병과 나병을 분간하여 나병으로 판정되면 부정하다고 여기고(감염)진영 밖에서 격리시켜서 지내도록 하고 나병으로 판정이 되지 않으면 일주일을 격리 시킨 후에 다시 검진하여 그 병색이 번지지 않았다면 다시 일주일을 격리하였다가 검진 후 환부가 엷어지고 퍼지지 않았다면 단순한 피부병이라고 판단하여 정하자고 선포한 후 진중으로 합류시켰던 것이다. 구약의 선진들이 약 4000년경 전에 감염에 대응하였던 기록이다. 광야에서 약 400만 명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동안 전염병으로 노출되었던 적은 없었다. 물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지만 구약의 레위기에서 보았듯이 격리(진영 밖)와 방역(옷을 빨도록 함.)도 철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서 세계경제는 침체할 것이다. 빌게이츠가 지원하여 백신을 개발한다고 한다고 했지만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작금의 세계는 과학문명이 극치에 이르고, 끝을 치닿는 시장경제로 인해 국가와 국가 간 개인과 개인 간의 빈부격차가 날로 커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진화론적인 세계관으로는 현재의 인류를 규정할 수가 없다. 우주가 단순하게 인간위주로만 존재적 가치가 있고 인간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면 언젠가는 해결책을 나와서 인류가 발전해가는 것이라는 단순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초등학문이다. 하나님께선 자신의 적절한 때에 해결책을 주셔서 이 재앙을 해결하실 것이다.

우리나라도 윤리도덕이라는 가치가 오래전부터 훼손되고 있다. 정의나 윤리도덕의 기준은 시대적인 상황적 가치로 전락했다. 다수가 인정하면 쉽게 용납이 되고 쉽게 법으로 규정돼 강제성을 지니게 된다. 언론이 개연성만 있어도 뉴스를 남발하니 일반인 누구나가 가짜뉴스를 올려서 온라인상에 판을 쳐도 규제할 수가 없다.

사제지간의 도리에서도 학생인권이 우선이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에게도 교사는 일어나라 주의를 주는 행위 외에는 하지 못한다. 이제는 보건시간에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교육한다. 정치인들은 집권이 정당의 최고의 목적이기에 야당 때의 논리와 여당이 되어서의 논리가 모순이다. 집권논리이기 때문이다. 분양가 상한제가 없으면 강남의 주택의 가격은 산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이 국민들 앞에서 경제력 앞에서, 종교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여러 모양의 욕망을 누르지 못하고 사회 앞에 추한 모습들을 보였다. 이는 성경이 삶의 저울이 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관행과 대세라는 척더가 목회자와 성도들의 양심과 행동의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가 잣대가 아니라 세상아비의 모양세가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일어나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요나3:5~6)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니느웨성이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재앙을 거두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3:10)

교회들은 예산을 편성하여 대구와 경북 등 '코로나19와' 힘겹게 싸우는 도시들을 돕고 자원봉사자도 보낼 수 있으면 보내자. 그리고 구역별로 노역자나 연약자들을 선별하여 가정예배를 권유하되 주일 예배는 계속해서 드리자. 마스크와 소독, 열감지기 등 방역에 힘쓴다면, 드려지는 1시간 이상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이웃들에게 큰 피해를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집회와 기도회 등도 계속되어야 한다. 장시간이 필요한 예배와 집회의 경우는 평소와는 달리 1시간 정도 지나면 약 10분정도 환기를 시키면서 진행하면 될 것이다.

세상의 일들이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이해되어지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은 사탄의 간계와 하나님의 섭리로 역사는 흐르되 결국 하나님의 승리로 완성되어져 가는 것이다. 비록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한다고 하여도 지금은 예배와 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자복하고 회개해야 할 때이다.

(편집국)2020.3.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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