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동]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암살 의혹 – 국제적 파문으로 번져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 사람들이 유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실종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Jacquelyn Martin/AP)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사우디 대사관 앞에서 사람들이 사우디의 유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실종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Jacquelyn Martin/AP)

사우디아라비아의 유명 언론인이자 사우디 왕실 정책을 비판해 온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의 실종 및 암살 의혹이 국제적 파문으로 번지면서 사우디 및 중동의 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요 외신들도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며 터키-사우디의 중동 패권 경쟁 구도의 추이에 주목하고 있다.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지난 2일, 사우디의 유명 언론인인 터키계 아랍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터키명 Cemal Kaşıkçı, 60)는 전처와의 이혼서류를 수령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에 위치한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종적을 감췄다. 카슈끄지는 지난해 9월부터 미국에 거주하면서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사우디 왕실과 정책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게재해 온 반체제 인사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터키 소식통들은 현지 언론에 자말 카슈끄지가 사우디 영사관 안에서 ‘계획적으로’ 암살됐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우디 관리들은 이런 주장을 전면 부인하면서 카슈끄지가 건물을 떠났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가 건물 밖으로 나간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터키 현지 언론들은 자말 카슈끄지의 행방이 묘연해 진 지 사흘 만에 그의 암살 가능성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 로이터, 뉴욕타임즈(NYT), 가디언 등의 외신들도 이에 동의하는 반응을 보이며, 암살의 배후를 밝히라고 압박했다.

터키 정부는 카슈끄지 살해 순간이 담긴 음성과 영상 자료를 확보했다는 당국자의 발언과, 증거의 출처가 카슈끄지의 애플워치라는 내용까지 언론에 넘겼다. 터키 당국의 ‘적극적인 정보 공유’가 이어지자 진상 규명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도 거세졌다.

사우디와 우방관계에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지난 12일 “심각한 사건이며, 진지하게 살피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13일에는 “카슈끄지의 실종에 책임이 있다고 확인되면, 엄중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15일에는 사우디의 살만(Salman) 국왕과 직접 통화하고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을 사우디에 급파했다.

또한 영국, 프랑스, 독일 3국의 외무장관은 14일, “진실을 밝히기 위한 믿을만한 조사가 필요하며 누구의 책임인지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터키는 외신에 주요 정보를 흘리면서 터키 수사관이 직접 사우디 영사관으로 들어가서 수사할 수 있게 하라고 사우디에 요청했다.

파문의 여파는 사우디의 경제를 흔들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14일 사우디 리야드증권거래소의 종합주가지수는 한때 7%까지 급락했다. 또한 수도 리야드에서 23일 개최될 예정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도 글로벌 차량공유서비스 회사 우버(Uber)의 최고경영자(CEO) 다라 코스로샤히(Dara Khosrowshahi)를 비롯하여 세계 굴지의 기업인들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FII는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의 경제 개혁 계획의 일환으로 글로벌 기업 CEO들을 초대한 대규모 국제행사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NYT에 따르면, 수세에 몰린 사우디 외무부는 14일 “어떤 종류든 제재가 온다면 더 큰 행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NYT는 사우디 정부의 이 같은 맞수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며, “트럼프와 살만 사이의 첫번째 긴장의 징후로 양국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파문이 커지자 사우디는 점차 미국 및 터키와 타협점을 찾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살만 국왕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대통령에게 14일 전화를 걸어 “양국의 관계는 견고하다”고 강조했다. 15일에는 터키와의 공조 수사 및 터키 경찰의 사우디 영사관 수색에 동의했다.

또한 같은 날 사우디는 그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원유 생산량 증가를 약속했다. 칼리드 알팔리(Khalid A. Al-Falih) 사우디 산업에너지광물부(Energy, Industry and Mineral Resources) 장관은 인도 뉴델리(New Delhi)에서 열린 인도에너지포럼(India Energy Forum)에서 다음달부터 산유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놓고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분석을 내 놓았다. 이 분석들에 따르면, 먼저 사우디와 중동의 패권을 놓고 겨루어 왔던 터키가 이번 사건으로 주도권을 잡는 모양새다.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의 터키 전문가인 괴뉠 톨(Gönül Tol)은 터키가 카슈끄지 실종과 관련하여 확보한 정보들을 언론에 조금씩 흘려 보내면서 사우디를 궁지로 몰아가고, 반면 터키는 이 사건으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면 충분히 사우디에 견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봤다.

또한 카슈끄지 실종 열흘 후인 지난 12일, 터키가 미국인 앤드류 브런슨(Andrew Brunson) 목사를 가택 연금 상태에서 풀어 줌으로써 그간 얼어 붙어 있던 미국과의 관계를 풀고, 국제적 비난을 사우디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됐다.

미국의 경우는 이번 사건이 다음 달 5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재개하기로 한 대(對)이란 경제 제재의 후폭풍을 막을 수 있는 호재로 작용했다.

이란산 원유 공급이 차단되면 석유값이 오를 것이고, 높아진 유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뻔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우디 및 다른 산유국에 부족분을 채울 수 있도록 원유 증산을 요구했으나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 카슈끄지 실종사건으로 사우디를 압박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고, 사우디는 15일에 원유 증산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사우디 왕실은 여전히 배후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15일 살만 국왕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한 데 이어, 16일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역시 같은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나 미국 군사위원회(US Armed Services Committee) 소속의 공화당 상원의원 린제이 그래함(Lindsey Graham)은 폭스뉴스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모르게 진행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못박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15일 사우디 영사관을 수색하기 시작한 터키 경찰은 영사관 안에서 살해가 일어났다는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으나 ‘독성 물질’을 발견했으며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사우디는 최근 몇 년 사이 왕족들을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구금,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 선고 등 단호한 정책을 시행했다. 또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왕족 및 유력 인사들이 실종되는 등 국제 사회와 주요 언론들에게 인권을 탄압하고 유린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윤지언 기자] 2018-10-1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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