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이 지나고 5월 15일 팔레스타인에겐 "재앙의 날"이라는 아랍어인 "나크바"가 있었다. 이스라엘 독립이 2천년간 나라없이 떠돌아 다닌 유대인에개는 기쁜날이지만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에겐 재앙이었기에 같은 사건을 두고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15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해 최소 25명의 사상자를 냈다. 15일 발생한 유혈사태는 다른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발생하였다. 오전  9시 30분경 이스라엘 주요도시인 텔아비브에서 트럭에 의한 사고로 약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체포된 운전자는 이스라엘-아랍인으로 현재 단순 사고인지 고의적인 테러였는지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오전 11시경에는 예루살렘근교이며 팔레스타인 행정수도인 라말라 근교 칼란디야 검문소에서 발생한 데모가 수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이후 오후 1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국경지역인 골란고원의 드루즈 마을에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또 시리아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와 시위를 계속하여 이스라엘 군인이 발포해 최소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1시 15분경에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역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가 있어 레바논 군인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였고 오후 4시경에는 가자지구 아래즈 검문소에서 10명의 팔레스타인인 검문소를 폭발하려는 목적으로 폭탄을 설치하였으나 이스라엘 군에 의해 저지됐다.

이날 발생한 사건 중 특이한 것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국경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서는 이스라엘 군인이 총격을 가해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레바논과 이스라엘 국경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에선 레바논 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최근 시리아에서 지속되고 있는 민중봉기로 위기에 처한 시리아가 의도적으로 국민의 시선을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옮기기 위해 침묵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크바의 날' 시위의 배경

15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최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배경이 되고 있다. 먼저 중동 전역에서 일어나는 민중봉기의 영향으로 팔레스타인 온건당인 파타당이 극우파인 하마스와 연정을 시도했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측은 더 이상 파타당과 협상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수반인 무함마드 압바스는 9월달 유엔과 EU의 승인 하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승인하려고 공식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15일 발생한 유혈사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9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선언에 이어 발생한 이번 유혈사태는 매년 지속되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재앙의 날이라는 5월 15일 자체가 의미가 있다면 이와 유사한 유혈사태가 연례 행사처럼 있어야 하지만 2000년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경지역에 위치한 아랍 마을인 움알파햄에서 있었던 대규모 대모 외엔 지금까지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핵심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즉 올해 발생한 유혈사태는 단순한 팔레스타인의 분노의 표출이 아닌 다른 의미와 의도가 있는데 그것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올해 9월 팔레스타인 국가가 선포되면 당장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 주면 아랍국가에 흩어진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다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로 돌아올수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국가가 선포된다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난민이 다시 복귀할수 있는 명분이 더욱 강해진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쟁점 중의 하나가 바로 팔레스타인 난민 복귀문제인데, 이번 15일 나크바의 날 시위를 통해 팔레스타인 난민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팔레스타인 정당과 이스라엘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15일 발생한 유혈사태의 대부분이 레바논, 시리아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에 의해 주도되었고 대부분 사상자 또한 레바논, 시리아국경에서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15일 이스라엘 내 250만 명 가량의 아랍인, 서안지구의 250만 명 가량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150만 명 팔레스타인은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스라엘 주요 언론들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에서 특별한 동요가 없음을 보도하고 있다.

즉 이번에 발생한 소요사태는 중동국가에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이 자신의 지위와 복귀에 대한 투쟁이었다는 해석이 무게를 두고 있다. 팔레스타인 난민이 다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권리는 2천년전 디아스포라한 유대인이 1948년 이후 이스라엘로 돌아올수 있는 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측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의 복귀에 대한 부분은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반대를 못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갑자기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과거 땅문서와 집문서를 가지고 다시 집과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기에 물러설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동국가에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각자 자신의 주장을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며 옳고 그름을 외치고 있다.

유럽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러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두고 최근 팔레스타인 편으로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 이유는 명분싸움에서 이스라엘에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대인이 자신의 국가로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이 있듯이 팔레스타인 난민이 자신의 국가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분명한 명분이 있다.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간 분쟁 기원

하지만 이러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을 살펴보면 사실 유럽국가들에 있다. 2차 대전 이전에 이스라엘에 살던 유대인은 소수였고 팔레스타인과 평화롭게 공존했었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지금의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2차 대전 동안 학살을 피해 피난했던 유대인들이 전쟁 이후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자신의 집에는 유럽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유대인은 전쟁후에도 자신의 집과 땅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은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해도 답을 얻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백만 유대인이 이스라엘국가가 건설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황무지였던 새로운 땅으로 몰려오게 되었다.

국제사회는 현 상황을 바라보며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친 이스라엘 편이 되었다가 친 팔레스타인 편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은 힘에 의해 움직이는 부조리하며 모순된 강대국에 의해 주도되는 국제사회 속 인과관계이며 동시에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분쟁이 핵심이다. 특히 2차 대전 이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은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정치화되며 종교권력화 된 기독교인의 탐욕에 있다.

미션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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