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8조를 폐지하자는 국민투표 결과가 '폐지 찬성'으로 나오자 기뻐하는 낙태 찬성 유권자들 (사진=Clodagh Kilcoyne/Reuters)

국민의 87%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수정헌법 제8조를 국민투표를 통해 폐지키로 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아일랜드 선거관리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수정헌법 8조(낙태 금지법)의 폐지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폐지에 찬성하는 표가 66.4%, 반대표가 33.6%로 투표 참여자의 2/3가 낙태 금지법 폐지에 찬성했다. 이번 국민투표는 40개의 선거구에서 치러졌고, 전체 336만 명의 유권자 중 64.1%가 참여했다.

수도인 더블린(Dublin)에서는 77%의 유권자가 찬성표를 던졌고,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며 3년 전 동성결혼 찬반 투표시 유일하게 반대표가 많았던 로스커먼(Roscommon) 주에서도 찬성이 57%로 반대(43%)보다 많았다. 이번 투표에서 유일하게 반대표가 더 많았던 주는 도네갈(Donegal)로 찬성 48.13%, 반대 51.87%였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번 투표 결과를 가지고 하원에 입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해당 입법안은 임신 첫 12주 이내 낙태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으며, 12~24주 사이에는 태아의 기형 및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협이 발생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일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게 된다. 또한 중절 수술 전에 사흘간의 재고의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의사의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중절 수술을 거부할 수 있다.

기존 수정헌법 제8조는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존권을 부여해 낙태를 할 경우 최대 14년형을 선고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산모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를 제외하고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되었어도 낙태를 불허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1983년 수정헌법 제8조가 발효된 이후 약 17만명의 임신부가 영국 등에서 '원정 낙태'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투표 결과를 집계 중인 계수 요원 (사진=Brian Lawless/PA)

가톨릭교회가 장악해 온 아일랜드에서 낙태 허용이란 생각할 수 없는 정치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작년에 레오 바라드카르(Leo Varadkar. 38)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 2015년 실시됐던 아일랜드의 ‘동성결혼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바라드카르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는 의사 출신으로 당시 보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투표 후 동성결혼이 허용되자 그는 이를 “역사적인 날, 국민투표라기 보다는 시민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바라드카르는 또한 작년 총리 당선 시 2018년에 낙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투표 결과에 대해 “아일랜드의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고 묘사했다.

다함께 예스(Together for Yes) 캠페인의 공동책임자인 올라 오코너(Orla O'Connor)는 이 결과를 “여성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아일랜드에 대한 거부”라고 말했다.

한편,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이 날은 “비극적인 날”이라고 애통해했다.

낙태 반대 운동가인 존 맥궈크(John McGuirk)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마음이 아프다”라고 투표 결과에 대한 운을 띄우면서 “오늘은 몹시 힘든 날이 될 것이지만, 머리를 높이 들고 있어라. 당신이 믿는 것을 변호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군중이 전적으로 당신을 대적할지라도 침묵하지 마라. 오히려 침묵하고 있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동료 운동가들을 격려했다.

‘수정헌법 8조와 생명을 지키자’는 캠페인(Save Lives, Save the 8th)을 벌여온 낙태 반대 운동가들은 자신들의 사이트(www.save8.ie)에 “수정헌법 8조는 태아의 생명권이 항상 존재함을 인정하는 법이었다. 이번의 아일랜드 인들의 선택은 역사적인 비극이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지지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옳은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아일랜드에서는 곧 아기들을 죽일 수 있는 법이 도입될 것이나 우리는 그 아이들이 아일랜드에서 생을 마감할 때마다 그것에 반대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럽 국가 중 낙태를 허용한 국가들은 아이슬란드(임신 16주까지), 스웨덴(임신 18주까지), 네덜란드(임신 22주까지) 등이 있으며, 폴란드와 키프로스는 산모 건강에 치명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 태아 기형, 성폭행, 근친상간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몰타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지한다. 인구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남미에서는 쿠바, 푸에르토리코, 가이아나, 우루과이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가 낙태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윤지언 기자] 2018-05-2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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