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시위, 가자지구 유혈충돌로 4명 사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후폭풍이 거세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비난하고 나섰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유혈 충돌로 4명이 사망하는 등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앞에 모인 팔레스타인 시위자들 (사진=AP/Mahmoud Illean)

외신들에 따르면, 6일 트럼프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발표 후 이슬람권 곳곳에서 즉각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터키 이스탄불 미국 영사관 앞에 천오백명의 군중이 모여 미국을 타도하자고 외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미국은 테러의 어머니라고 비난하고, 요르단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파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국기가 불탔다.

10,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있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미국 대사관 앞에서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집결해 반미와 팔레스타인 지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분노의 날을 선포했다. 라말라를 비롯해 서안 30여곳에서 시위가 잇따랐다. 동예루살렘에서는 시위대 13명이 이스라엘 경찰에 체포됐다. 하마스는 8일 이스라엘에 로켓포 3발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응하여 가자 지구를 전투기로 공습했다. 가자지구에서 시위대 중 2명과 하마스 대원 2명이 군경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사망자가 나온 것은 2014년 이후 3년 만이다. 부상자는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1000여 명에 이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은 8일 긴급회의를 열고 “미국의 선언은 중동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 등 유럽 5개국은 안보리 회의 후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미국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동·아프리카의 22개 아랍계 국가들이 참여하는 아랍연맹은 9,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열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은 국제법을 위반했고, 중동평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 “미국은 결정을 철회하라.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인정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소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자들이 철조망을 넘으려 하고 있다. (사진=AP/Bilal Hussein)

국제사회 반대에도 강행  

AP, AFP 등 외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발표 이전부터 매일의 추이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트럼프에게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공식 발표를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트럼프는 발표에 앞선 5,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살만 사우디 국왕,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흐 알-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 주변 4개국 수반들에게 전화를 걸어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의사를 밝혔다. 4개국 정상들은 미국의 일방적 행보가 중동의 평화를 저해할 것이며, 극단주의자들을 부추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랍연합은 분노했고, 유엔 또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며, 터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의 이 같은 결정은 안전선을 넘는 것이며, 이스라엘과 수교를 단절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프랑스, 중국 등도 추후에 발생할 문제들을 우려하며 유감을 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는 미국이 대사관을 옮길 경우 새로운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민중봉기)를 일으키겠다고 위협했다. 영국 주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외교대표인 마누엘 하사시안은 BBC트럼프는 중동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비난했다.

중동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자, ‘중동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일이 될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시부터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의 대사관 이전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 대사관 이전에는 얼마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또한 이 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의하면, ‘2개 국가 해법’(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공존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함과 동시에 ‘2개 국가 해법도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 선언'에 사인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뒤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사진=AP/Evan Vucci)

예루살렘 지위, 중동 문제의 핵심 화두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로 현재 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부터 예루살렘을 자기들의 수도로 주장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은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8 1차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서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했다. 1967년에는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하였고, 1980년에는 전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하는 법률을 발효시켰다. 국제사회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팔레스타인은 향후 독립국 자격을 얻게 될 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려 하고 있어 이스라엘의 주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렇듯 예루살렘의 지위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의 수도 여부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두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임에 동의하고 있고, 미국 정부도 같은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던 중 1995, 미국 의회는 예루살렘 대사관법’(Jerusalem Embassy Act)을 제정했다. 이는 현재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법으로, 1999 5월까지 대사관을 이전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에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미국 대통령이 6개월마다 대사관 이전 문제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되어 있다.

대사관 이전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아랍 전체의 반발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트럼프 이전의 역대 대통령들은 이 법안의 적용을 유예해 왔다. 트럼프 역시 지난 6월에 한 차례 이전 문제를 보류했으나 결국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이행키로 했다.

이로써 미국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첫 국가가 됐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이 같은 결정은 이스라엘의 손을 노골적으로 들어주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중동 및 이슬람 국가 내에서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즈(NYT) 등 미국의 매체들은 트럼프가 이번 결정으로 골수 지지층의 집결을 이루어 내고 러시아 스캔들로 취약해진 정치적 기반을 다져 정치의 돌파구로 삼으려 한다고 분석하면서, 영토뿐 아니라 종교 문제까지 안고 있어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지언 기자] 2017-12-1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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