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베트남에 복음이 공식적으로 전해진 것이 1911년이니 베트남교회는 벌써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현재 1.5% 안팎의 낮은 복음화율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들어 대외적으로 베트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베트남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필자가 90년대 후반기에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북부 베트남에 소수의 한국인 사역자들만이 있었으며, 4천만 이상이 살아가는 북베트남 지역에 공인된 교회는 15개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04년도를 전후한 시점에서도 북베트남 지역의 교회는 전도는 커녕 본인 신앙생활도 쉽지 않아 보였고 납작 엎드려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당연히 선교사들도 밀착된 감시의 대상이었기에 적극적인 활동이 쉽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필자는 베트남 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를 떠올리며 성령께서 베트남교회에 임하셔서 베트남교회가 여러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초대교회처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오래 동안 하나님께 기도해왔다. 이 땅의 주인공들인 그들이 깨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던 가운데 2006년 APEC 정상회담과 2007년 초 WTO 가입을 기점으로 베트남 정부는 이유야 어찌되었건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이기 시작했고 공인교회나 가정교회의 구별이 없이 모든 베트남 현지 교회들도 부흥을 갈망하며 신앙의 야성미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부흥을 바라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가운데 2007~2009년 사이의 급작스런 개신교 부흥에 깜짝 놀란 베트남 정부가 다시금 고삐를 죄고 있지만 한번 부흥을 맛본 베트남교회는 이전처럼 움츠러들지 않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섬기고 있다.

베트남 교회의 시작

베트남 개신교회는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CMA 소속 제프레이, 호슬러 그리고 허글러스 선교사가 다낭(沱灢_Danang)에 공식적인 사무실을 오픈하면서 시작된 베트남 선교는 1927년에는 74 교회 4,236 성도로 성장하였고, 1936년에는 각 교단의 이름을 버리고 '베트남개신교회'라고 부르다가 1950년에 '복음주의교회'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제프레이에 의해 1921년 9월에 개교한 다낭신학교와 이후 계속해서 냐짱(芽莊_Nha Trang), 다랏(Đà Lạt) 그리고 반메투옥 등에 신학교들이 설립되었고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며 캄보디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2차대전 발발로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철수하게 되거나 1943년 일본군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고, 1954년에 북부 베트남에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서면서 교회가 폐쇄되고 개신교 지도자들은 투옥되었으며 많은 개신교도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였다. 거기다가  1975년에 베트남이 공산통일되면서 모든 교회의 활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고 이 때에 10여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베트남 남부의 교회 부흥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때 베트남 전국의 그리스도인은 15만 명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폐쇄되었던 교회들이 서서히 문을 열고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88년에 베트남 정부가 ‘종교활동에 대한 법령’을 발표하면서 베트남 교회는 다시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하노이에 1988년부터 5년 동안 신학교를 한시적으로 승인하기도 하였지만 제1회 졸업식에서 15명의 신학생을 배출한 이후로 신학교는 바로 폐쇄되었다. 베트남 정부는 이렇듯 개방과 박해를 통해 교회의 활동을 통제하였다. 즉 정부의 허락 하에 일부 교회들이 재건되어 270여 교회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나 2004년 아니 최근까지도 베트남 종교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과 사전 승인, 또한  '믿지 않을 자유'를 침범한다는 명목 하에 모든 종류의 전도를 금하는 등 실로 '종교의 자유'는 유명무실하였던 것이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증가하여 오픈도어와 미국외교부 '종교의 자유' 보고서에서 매년 발표하는 기독교박해국가의 5위권 안에 드는 불명예를 초래하였다. 선교적인 차원에서 보면 암울한 시기였다고 볼 수도 있다.

베트남교회 부흥의 시작과 현재

그러나 베트남교회의 부흥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1927년에 조직되었던 총회는 베트남 공산화와 더불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가 지난 2000년에 베트남복음주의총회(남부)가 베트남 정부에 의해 인준되어 다음해 2월에 공산화 통일 이후 최초로 역사적인 총회로 모이게 되어 신학교를 개교하여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고, 2004년 12월에는 베트남복음주의총회(북부)가 비록 15교회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부의 인준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북부총회의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신학교를 운영하지는 못하여 15명의 신학생을 호치민시에 위치한 남부신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가 2013년에야 비로소 북부총회에서도 신학교를 열게 되었다. 이 시기에 공인되지 못한 가정교회들은 핍박 가운데서도 활발한 전도활동을 통해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필리핀에서 송출하는 극동방송의 복음메시지를 듣고 북부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흐몽족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2006년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APEC) 정상회담과 2007년 1월 WTO 공식 가입을 활용하셔서 베트남 정부에 대내외적으로 종교적인 활동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하셨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2007년 말에 7개 종교단체를 공인하게 되었다. 또한 고무적인 일은 호치민시에서 범교단연합으로 성탄절 대중전도집회를 공설운동장에서 진행하여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2천여 명이 주님을 영접하였고, 하노이에서도 가정교회 연합으로 2008년과 2009년 국립마당운동장 앞 공터에서 수천 명이 참석하는 성탄절 연합예배를 드렸고 여기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또 베트남 정부에 의한 기독교 핍박이 엄청 강한 시절이면서 베트남 경제가 극히 어려웠던 때인 1990년대에, 수 많은 베트남의 젊은이들과 인재들이 유학생과 노동자로 러시아, 동유럽, 말레이시아,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의 미래와 경제 발전을 위해 수십만의 자국 젊은이를 외국으로 보냈지만 주께서는 이들 중 상당수를 러시아, 독일, 말레이시아와 한국 등에 불러모으시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훈련시키시고 5~10년 뒤에는 다시 베트남으로 부르셔서 베트남 가정교회를 개척하는 자들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현재 소수민족을 제외한 베트남교회의 부흥은 바로 이들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 가정교회 리더들은 2000년대 중반 교회를 개척할 때 당연히 많은 핍박을 겪고 신문에 국가와 민족의 반역자로 실리는 등 국가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께서 함께 하심 가운데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들을 베트남 정부가 막을 수는 없었다. 북부 하노이에서 뜨겁게 일어나는 한 가정교회는 10년 만에 40여개 성에 교회가 개척되고 4천여 명이 넘는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감사한 것은 1975~2007년 사이에 베트남의 유일한 공인교단이자 가장 큰 공인교단인 CMA 교단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가정교회들과는 상대도 안 하려고 하였지만 이제는 기꺼이 협력하고 북서부 산악 지역의 많은 소수민족 교회들을 지교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재작년에 베트남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북부 하노이에 신학교에서 새로이 25명을 받아들여 가르치고 있다. 한편 2009년 즈음부터 몇 몇 그룹의 한국 사역자들에 의한 성경학교와 지하신학교가 문을 열어 베트남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1975년 15만 명이었던 베트남의 그리스도인은 현재는 대략 그 10배인 약 15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수십 년의 핍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하심 가운데 중국교회가 1억명이 넘는 엄청난 부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적 비밀 병기로 준비되었던 것과 마찬 가지로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베트남교회를 준비시키셨다.

미전도종족 세계선교의 주자로 일어나고 있는 베트남 교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작년에는 베트남의 북부 하노이에서 선교세미나가 열렸고 올 초에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 시에서 선교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다. 3일간 열린 선교 세미나에 참석한 베트남 북부와 남부의 100여 명의 가정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선교세미나를 통하여 세계 선교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세계선교 현황의 흐름을 보면서 글로벌한 관점을 갖게 되었다. 한 가정교회 리더는 "지금까지 베트남교회는 100년 동안 외국 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이제는 베트남교회가 베트남 국내의 미전도종족과 나아가 세계교회와 연대하여 복음을 받지 못한 민족들에게 나아감으로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함께 준비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베트남하면 아직은 선교를 해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북베트남에는 여전히 20여개의 미전도 종족이 남아 있고, 800만이 살아가는 하노이에는 실질적으로는 한 개의 공인교회와 수 십개의 가정교회 가운데 3~5천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베트남교회들은 이미 선교에 눈을 뜨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북베트남에서도 현지인 사역자들에 의해 ‘카이로스’ 훈련과 ‘비전스쿨’이 진행되고 있다. 마태복음 28:18~20절의 교회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 앞에 베트남교회는 “주님 베트남교회가 여기 있사오니 저희를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대답하고 있다. 베트남교회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사도행전 1:8절의 주님의 말씀 따라 하노이와 북베트남과 국내 미전도 종족과 세계 선교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의 리더들을 파송 하였던 로마시대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였던 안디옥교회의 모형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디아스포라와 노동자들은 우리 한민족 못지 않게 전세계에 퍼져 있다. 라오스의 680만 인구 가운데 베트남 민족이 100만 명쯤 되며 캄보디아에도 그렇고 방콕 시내에만도 약 100만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나 호주 미국 러시아 동유럽 중동 카프카즈 등에 사는 베트남 교포나 유학생 노동자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우리 한 민족이 주로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서구권에 디아스포라들이 많다면 베트남 민족은 서구 비서구 할 것 없이 전세계 어디나 골고루 퍼져 있다. 베트남교회는 우선은 54개 민족이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내의 미전도 종족들과 인근 캄보디아와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 있는 베트남 디아스포라들을 선교하기 위해 힘쓸 것이지만 머지 않아 타 민족 선교에도 힘쓸 것이다. 이들 베트남 디아스포라는 장차 베트남교회가 중국교회와 세계 선교의 중심국으로 발돋움 할 때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전세계적인 그물(네트워크)을 이루어 주께 쓰임 받을 것이다.

결론

베트남은 지금까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자력으로 외세를 다 물리쳤다. 800년 전 몽골의 세 차례의 침략을 막아낸 것뿐 만 아니라 19~20세기의 세계 최강자들이었던 프랑스와 미국 일본 중국에 이르기까지 시대 시대마다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베트남 민족은 단결하여 그 모두를 다 이겨 내었다. 왜 그렇게 베트남 민족이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선하신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하여 이렇게 베트남 민족을 보존하여 오셨음을 믿는다. 이처럼 강인하게 훈련된 베트남 민족은 마지막 시대에 한국교회 중국교회 인도교회 필리핀교회 인도네시아교회 등 전세계교회와 함께 ‘다시 오실 왕의 대로 아시안 하이웨이’의 막힌 담을 뚫기 위해 기꺼이 최전선에 선 선봉부대로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주님을 의지하며 세계교회와 연대하여 북인도와 페르시아 지역을 너머 아랍 북아프리카 터키 카프카즈를 지나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민족이 될 것이다.

베트남=정아브라함 특파원 [입력 2015-04-19 @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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