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배한 정치·종교적 이기주의 가운데 길을 잃은 시리아

19만명 이상의 사망자(2014년 8월 현재 UN공식통계)를 내며 3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은 지금의 국제사회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세계적 리더십을 행사하며 자신들이 마치 선한 목자인양 행세하는 국가들도 경제적 세계화라는 구호에 걸맞게 자국의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면 다소간의 희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희생을 헌신의 모양으로 잘 포장해서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가 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경우 형제의 배고픔과 벌거벗음을 보고서도 '스스로 배 불리고, 스스로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고 말만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다소 멀리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내세워 독재자요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는 등 불법을 일삼고 있는 사담 후세인을 처리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도 사담 후세인이 만들었다는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그토록 외쳤던 이라크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겨져 버렸다. 대신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자원에 대한 개발 이권은 더 많이 확보되었고 소위 세계적 리더십 국가들은 열심히 이 이익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는 '아랍의 봄'이 일찍이 종식된 리비아도 들 수 있다. 사담 후세인과 같이 불법을 행하는 독재자로 낙인 찍힌 가다피는 리비아의 '아랍의 봄'이 한창인 그 시절, 자국민 수 천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이유로 역시 서방 리더십 국가들이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휘두른 칼에 참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당시 서방 리더십 국가가 주축이 된 다국적군은 마치 걸프전 때처럼 매일같이 리비아의 하늘에서 포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가다피 제거가 성공적으로 마쳐진 이후, 그 리더십 국가들은 승전국의 자격으로 석유 매장량 세계 9위를 자랑하는 리비아에 들어와 각종 이권을 바삐 챙기고 있다. 돈이 되는 두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라는 미명하에 비교도 되지 못할 만큼 많은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는 시리아를 위해서는 왜 이제까지도 어느 리더십 국가들도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성전을 수행하지 않는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시리아는 돈이 되지 않는다.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잉여가치를 생산할 만한 석유자원이 시리아에는 없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 속 또 다른 그늘_적대 관계인 “다이쉬(Daish)”와 현 시리아 정부의 '야합'

이런 경제적 세계화의 악영향은 죄인된 인간의 본성에 더욱 깊숙이 침투하여 정치·종교적 이기주의를 일으켜 시리아의 양들이 이리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어 뜯기게 하고 있으며, 급기야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이런 정황은 최근 시리아 동북지역과 이라크 북부지역을 장악하고 이슬람 국가(IS)를 선포한 “다이쉬(Daish)”의 수뇌부와 시리아 현 정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한 원수 지간이 되어야 할 “다이쉬”(Daish)와 시리아 현 정권이 서로 협력하고있다면 믿어지겠는가? 그러나 이런 루머는 더 이상 루머라고만 하기에는 이곳 아랍세계에 너무나도 편만히 유행되고 있는 에피소드가 되어 버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일 없다’는 우리 속담처럼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이다. 아랍의 의식 있는 젊은이들과 대화해 보면 대부분 시리아 현 정권과 “다이쉬”(Daish) 수뇌부의 야합에 대해서 알고 있다.

즉, “다이쉬”(Daish)는 이미 이슬람 국가를 선포했으므로 종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정당성 확보를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원하고 있는데, 그 종교·정치적 정당성 확보의 주요 원천이 바로 현 시리아 정권인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현 시리아 정권은 아랍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 존재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은 이슬람이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고 있는 ‘알라위’파로, 지난 40년 동안 시리아 내에서 공포정치를 해왔다.

때문에, 종교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다이쉬”(Daish)의 도둑질하면 손을 자르고 간음을 하면 투석형으로 사형에 처하는 등의 무자비한 이슬람 율법 적용이 오히려 시리아와 이라크 내 이슬람 종교를 정화하는 호전반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정통 이슬람 지역인 아랍의 중심부에 ‘눈에 가시’처럼 자리잡고 있는 시리아 현 정부를 제거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한 차원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시리아 현 정권은 오히려 “다이쉬”(Daish) 세력을 이용하여 정권의 부족한 종교·정치적 정당성을 채우고 있다. 시리아 현 정권은 '아랍의 봄' 초기부터 반군 세력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뒤,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목적으로 이들이 활동하고 있기에 강력한 정치력과 군사력을 무리하게 사용해서라도 국가의 안정과 안녕을 확보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바샤르 정권은 “다이쉬”(Daish)가 지금과 같이 혼란을 일으키며 활동을 계속 해 주어야 정치적 명분이 갖추어져서, 종교적 명분이 부족하더라도 뱌샤르와 그의 가문과 종파가 아니고서는 시리아를 구원할 자가 없다고 선전하며 무자비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아랍의 봄'을 진압하고 있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런 시리아 현 정권의 명분에 발을 맞춰주듯 “다이쉬”(Daish) 세력은 시리아 내 이곳 저곳에서 폭력과 불법을 무차별적으로 행사하고 있고, 동시에 바샤르 정권은 이제는 최소의 대응마저도 하지 않으며 “다이쉬”(Daish)의 활동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보고 있는 것이다. 즉, 필요악(必要惡)처럼 “다이쉬”(Daish)는 바샤르 정권을 필요로 하고, 반대로 바샤르 정권도 “다이쉬”(Daish)가 있어야 자신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고 정당화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시리아 백성들이 애매하게 고통 당하고 있다. 대부분이 온건한 순니 무슬림인 시리아인은 세속주의 정권의 폭압을 피하자니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종교적 폭력에 목숨을 위협받고 있고, 반대로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폭력을 피하자니 세속주의 정권으로부터 알라신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 중 상대적으로 여건이 괜찮은 사람들은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서도 국경을 넘고 있지만, 사방으로 둘러싸여 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은 이 어처구니 없는, 죄악으로 점철된, 인간 역사의 희생양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 현 정권이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다이쉬”(Daish)도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고 있어 대중으로부터 민심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랍의 젊은 청년들 가운데 이미 상당수가 “다이쉬”(Daish)를 진정한 이슬람 주의자들이 아니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시리아를 더 잘 아는 이는 없다. 지난 3년 반의 시간을 통해 주변 열강이 더 이상 그들의 목자가 아닌 것을 시리아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이해관계를 따라서 시리아를 대하는 삯꾼이 아닌, 시리아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을 선한 목자가 간절하다.  3년 반이 넘는 내전으로 이 땅에 속한 것은 다 잃어 버렸으나 천국을 소유함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시리아로 회복될 그 날은 언제일까.

허 온유 특파원

저작권자 © 미션투데이(Missio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