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 대세 속에 흔들리는 튀니지

민주화혁명 2년, 튀니지의 현실

[caption id="attachment_57" align="aligncenter" width="300"]튀니지 세속주의 대세속에 흔들리는 튀니지[/caption]

세속주의 대세 속에 흔들리는 튀니지 민주화혁명 2년, 튀니지의 현실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한 중동민주화혁명은 1500년 중동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아직 이집트, 시리아, 튀니지, 리비아 등에서는 여전히 이 혁명이 진행 중에 있다. 중동민주화 혁명 2년이 되는 즈음 다시금 이 혁명을 돌아보고 오늘날 실제 중동의 모습을 돌아보려 한다. 특별히 선교적으로도 정치사회적 변화가 현지 영혼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주고 있어 변화하는 중동상황을 고려하여 선교가 더욱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국가들의 실제 정세에 대해서 현장에서 통시적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는 현장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중동 바닥정세를 돌아보도록 하자.

질문: 중동민주화혁명의 시작이 된 튀니지는 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먼저 튀니지에서 시작한 민주화혁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답변: 시디 부지드의 한 청년이 화염자살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은 그 청년은 순교자가 되고 이후 1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순교자로 추앙받으며 다른 지역까지 혁명은 확산되었습니다. 가설린이라는 동네는 혁명 기간 동안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와 '순교자의 도시'라고 불리게 됐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항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혁명의 원인에는 독재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 경제발전의 불균형 등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혁명의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혁명 전 튀니지의 GDP는 공식적으로 4000불 미만이었지만 실제 소비지수는 8000불이었고 산업구조는 2차 산업구조로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농업과 관광업이 주요 수입원이었지요. 또 많은 사람들이 유럽 또는 산유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 생활은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튀니지 경제구조는 해외의존도가 높은 상태였지요. 이러한 경제구조로 인해 해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특별히 2008년 미국 경제 위기는 유럽과 산유국 등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주면서 튀니지 경제가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석유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지요. 정치적으로도 서구에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이어서 매년 700백만 관광객이 유럽에서 왔는데, 세계경제가 어려워지자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이 관광산업이었던 것입니다. 실제 밖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취업이 어려워, 국가로 유입되는 달러는 줄어들게 되었죠.

질문: 경제적 이유 외에 그 당시 국민들이 집권당에 대해 불만이 많고 반정부적인 마인드가 있었나요? 아니라면 경제적 이유만으로 폭발한 건가요?

답변: 튀니지에서는 언론통제가 심했기에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있었어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공공연히 거리에서 정권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하지 못했습니다. 경찰력도 삼엄했습니다. 그리고 개발 독재였기 때문에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처럼 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아랍과 서구지역과의 외교관계도 좋은 편이었고요. 가끔 일부 청년들이 정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했더라도 사람들의 형편은 좋았기에 정권에 대한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지역 간 불균형이 심했습니다. 수도가 자리잡은 지역에 관광시설,항구산업시설 등이 편중되어있습니다. 혁명이 처음에 시작됐던 시드부지드, 가설린 등 내륙 공업지역은 산업자본 투자비율이 동부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벤알리 및 집권당도 동부출신이었기에 집중적으로 부는 구매력 등 동부해안에 집중되었습니다. 즉,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시위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서남부 시드 부지드, 가설린 지역이 경제문제로 격렬하게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과 사우디의 경제위기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독재 정치 집권 당시 경제성장률은 좋았습니다. 교육비는 국가 전체 예산 중 30%가 교육 예산이어서 대학까지 무료였고 보건의료도 무료였으며 물가는 전 세계에서 121위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삶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바게트빵이 주식인데 한국돈으로 190원 뿐이었고, 기타 기본적 식료품, 사회보장 등도 두루 좋았습니다. 그런데 경제 위기 여파가 닥치기 시작하자 국가가 국민에 대한 편의 및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기가 어려워졌고 물가가 상승하고 빵값은 오르면서 민중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독재는 있었지만 국민들이 살기에 어려움 없이 보장해주었을 때는 전혀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가 경제력은 바닥이 드러났고 국민들은 살기 힘들어지면서 집권당 및 독재정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질문: 그러면 민주화혁명 이후 기존 집권당이 붕괴되고 난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세력이(살라피스트)가 집권했나요?

답변: 튀니지는 초대 대통령이 독립한 이후부터 30년 간 독재정치를 했지만 서구문물 특별히 프랑스에 대한 것을 배워서 적용하자는 실용주의 노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도 서구 세속주의를 지향하게 되면서 이슬람 국가였지만 프랑스의 교육, 사회/경제/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했고, 그래서 대학교 커리큘럼도 프랑스와 비슷합니다. 또한 개발형 독재를 하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원리주의이슬람이다보니 이들에 대한 숙청을 진행했습니다. 또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주었고, 1부 1처제를 초기부터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개혁으로 말미암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23년 독재했던 2대 대통령 벤알리 대통령 때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이 때문에 애초부터 튀니지는 이슬람원리주의 당이 나올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심지어는 초대 대통령이 라마단 때 언론에 나와 쥬스를 마시면서 일할 땐 먹으면서 일하라고 하기까지 했으며, 히잡이 여성의 올무라고 생각하여 여성들의 히잡을 벗겨주곤했습니다. 다른 말로 근대화 세속화를 강력히 진행했던 것이지요.

질문: 튀니지 민주화 혁명은 내부 문제가 아니라 외부 경제적인 이슈에 따라서 바뀐거군요. 그러면 정권이 실각한 후 누가 집권했나요?

답변: 실질적으로 민주화 혁명 때도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영향력은 없었고, 온건이슬람당이 민주화 혁명에 조금 관여했다고 주장하지만 민중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혁명 이후 100여개 이상의 당이 생겨서 선거를 치뤄야하는데 벽에 후보들의 선거홍보물을 다 붙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나마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당이 온건이슬람을 표방하는 안 나흐당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공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안 나흐당을 지지해주었고, 결국 온건이슬람당이 40여개의 의석을, 민주연합당이 10여개 의석을 차지해 연합정부가 구성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선거에 참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도 있지만 국민정서도 이슬람원리주를 혐오합니다.

질문: 튀니지는 아직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 정세는 어떤가요?

답변: 결국은 혁명의 최대 수혜자는 온건이슬람당이었지만 50년 동안 한 집권당이 국가 운영을 해오다가 그 집권당이 한번에 물러나게 되면서 온건이슬람당에게는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가를 운영할 실력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슬람당이니 외교관계가 쉽지 않고, 관광객은 더욱 줄고 실업률은 높아지고 지역불균형도 여전히 심했습니다. 이렇게 집권당인 온건이슬람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야당에서 반격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올 봄에 현 집권당을 비판하던 사회주의 계열의 대표가 암살당한 것입니다. 현재 정계는 암살범을 이슬람원리주의자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현 집권당은 이슬람원리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야당정치권과 사회주의 좌파계열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7월에도 야권 사회주의 계열 정치인이 두번째로 암살되는 사건이 이 있었는데 동일한 방법으로 암살을 당한 것으로 보아 역시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암살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으로 현 집권당은 지지율은 40%에서 10%로 크게 떨어졌습니다. 또 치안 불안과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회복될 기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튀니지 국민은 전체적으로 큰 변화나 혼란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경제적 이유로 인해 오히려 독재 정치 당시를 그리워하며 그때가 더 나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튀니지는 다른 아랍지역에 비해 원래 매우 안정적이어서 지난 100년간 전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국민들도 안정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사실 혁명때도 일주일 만에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지금도 서부지역에서는 현 집권당의 건물을 방화하는 등 폭력성을 조금 보이고 있지만 전국적으로는 평화주의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습니다.

질문: 세속화가 지금 커다란 이슈인 것 같은데 이미 세속화 된 거 아니였나요?   답변: 원래가 세속주의이슬람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에 대해 완전히 저항적인 태도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여성인권은 더욱 높아졌고 페니니즘 운동가 및 지지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이슬람원리주의(살라피스트)에 대한 저항세력(할렘쉐이크)도 생겨나고 있으며 이슬람원리주의(살라피스트)를 풍자하는 노래 및 댄스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현재 튀니지는 이슬람이 국가 전체의 정체성도 아닐 뿐 아니라 문화 및 국민정서는 오히려 반이슬람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기들을 지켜왔던 종교 및 정치로부터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소수의 청년그룹들은 세속화에 대한 저항으로 이슬람원리주의로 가기도 합니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진리를 찾기 위한 혼란이 있습니다. 캠퍼스 안에도 진리를 찾기 위한 그룹이 생기고 있고, 심지어 불교 및 명상까지 하고 있습니다. 캠퍼스의 많은 청년들이 진리를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튀니지 상황이 엄청난 혼란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대안 없이 다 물러나라고 외치는 것밖에는 없는 상황이지요. 그리고 막연한 소망을 갖고 다른 대안 및 구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질문: 지금 튀니지가 혼란스러운데 이런 상황에서 튀니지의 선교상황은 어떤가요?

답변: 튀니지 혁명이 끝나고 1시간 정도의 다큐멘타리가 방영되었습니다. 바로 튀니지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내용의 다튜였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지하교회 현지 그리스도인들의 인터뷰도 있었습니다. 현지 교회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고, 튀니지에도 교회가 있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는 맥락으로 정부 고위관리들도 방송에서 인터뷰 했습니다.

튀니지 인구 천만명 중에 기독교인이 3-400명이니 영향력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엄청난 증가를 보 현재 튀니지에는 1000여명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1997년도에 7-8명, 1999년 20명, 혁명 이후로 급격히 늘어 1000여명 된 것입니다. 많은 튀니지 영혼들이 갈급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고 성경책을 보고 변화한 친구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튀니지는 혼란 가운데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튀니지에 대해서는 2000년 중반부터 한국의 주요 교회가 관심 갖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혁명 이후에는 교회 단기팀들이 들어오고 있고, 튀니지를 위한 기도운동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튀니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국의 교회들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세계 교회의 헌신과 기도로 튀니지에 새로운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질문: 이러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함께 많은 청년들의 마음이 가난해지며 앞으로도 더 큰 변화가 있을것으로 예상이 되겠습니다.

답변: 예. 실제로 많은 튀니지 사람들이 이슬람을 혐오하고 배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데 있어 앞으로 세속주의가 더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겠지요. 튀니지를 위한 집중적인 기도와 기독청년세대들이 일어나 튀니지 청년을 깨우는 사역이 필요합니다.

질문: 이번 라마단 기간 튀니지의 풍경은 어떤지요?

답변: 2011년 혁명 직후에는 술주정뱅이들이 제일 좋아했습니다. 라마단 기간에 밖에서 거리에 나와 공개적으로 술을 먹으며 자신들의 모습과 자유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길 좋아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나면서 거리에 나와 술을 먹진 못하지만 그래도 금식을 지키는 사람들은 많이 없습니다. 실제로 45도에 육박하는 기후에서 라마단 금식을 지키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이러한 기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금식을 하기가 어렵지요. 많은 사람들이 몰래 음식을 먹습니다.

마무리 튀니지의 생생한 소식 감사합니다. 튀니지가 사회 정치적으로 많이 혼란스럽군요. 이러한 튀니지를 위해서 많은 기도와 섬김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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