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까의 시리아인들, 팔라펠 가게에서 전쟁 전을 맛 보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도였던 시리아의 북부 도시 락까(Raqa).

지난 해 10월 중순까지만 해도 텅텅 비어 있던 이곳에 최근 수백 가구의 시리아인들이 돌아왔다. 한 때 인구 30만 이었던 락까는 전쟁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최근 식당도 문을 열었고 주민들은 간절히 재건을 바라고 있다.

아마르 카삽(Ammar Qassab) 씨는 하루에 1200개의 팔라펠 샌드위치를 판다. 락까로 돌아온 주민들 중에 아직 부엌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AFP/Delil Souleiman)

아마르 카삽(Ammar Qassab) 씨는 하루에 1200개의 팔라펠 샌드위치를 판다. 락까로 돌아온 주민들 중에 아직 부엌을 고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AFP/Delil Souleiman)

AFP는 17일, 이슬람국가(IS)의 수도였던 시리아 북부 도시 락까(Raqa)의 현재 풍경을 전했다.

시리아의 락까(Raqa)는 전쟁의 잔해로 여전히 유령 마을 같다. 그러나 아마르 카삽(Ammar Qassab)씨의 팔라펠 가게는 장사를 시작했다. 락까 중앙에 있는 카삽 씨의 작은 가게는 손님들로 붐볐다. 33세의 직원은 총알 구멍이 있는 노란색 통에 기름을 가라앉히며 “우리는 약 2주 전에 장사를 재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삽 씨는 “여기서는 팔라펠 왕이 유명합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불과 몇 달 전, 이 시리아의 북부 도시는 이슬람국가(IS)의 성소였다. 쿠르드족 전사들과 미국 전투기들의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지하디스트들은 이곳에서 물러갔지만 도시는 완전히 변형됐다.

한 때 인구 30만 명의 도시였던 락까는 지난해 10월 중순까지도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폭탄이 터질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가구의 주민들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카삽 씨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하루에 약 1200개의 팔라펠 샌드위치를 판매한다.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아직 부엌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식사를 대신한다고 설명했다.

팔라펠은 아랍의 전통음식으로 하룬 알 라시드 공원 앞에 있는 팔라펠 가게는 40년 이상 락까의 랜드 마크였다. 지하디스트들이 이 도시를 점령한 2014년 이후에도 계속 열려 있었지만, 1년 전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 공원 맞은편의 킹 팔라펠 식당은 40년 간 락까의 랜드마크였다. (사진=AFP/Delil Souleiman)

하룬 알 라시드(Harun al-Rashid) 공원 맞은편의 킹 팔라펠 식당은 40년 간 락까의 랜드마크였다. (사진=AFP/Delil Souleiman)

카삽 씨나 락까의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팔라펠 가게 문이 열린 것은 친숙한 것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의 상징과도 같다.

카삽과 직원은 으깬 콩과 바삭한 팔라펠을 납작한 빵 속에 피클과 함께 집어 넣었다. 그리고 고객들은 익숙한 듯 플라스틱 의자를 가게 앞으로 끌어 당겨 팔라펠 샌드위치 맛을 즐겼다.

백발의 이싸 아메드 하산(Issa Ahmed Hassan) 씨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가 10살이었다. 가족과 나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것을 구경하려고 공원을 자주 찾았다”라고 회상했다. 하산은 2년 전 쿠르드 족의 다른 소수파와 함께 락까를 떠났다가 최근에 돌아왔다. 팔라펠 가게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들른 첫 번째 장소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락까는 분명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2미터 높이의 전쟁 잔해 아래서…

그러나 여전히 귀국자들은 너무나도 느린 재건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수십 명의 보안군과 민간인이 지난 10월부터 IS에 의해 남겨진 부비 트랩과 길가 폭탄의 폭발로인해 사망하고 부상당했다.

폐허가 된 구 시가지의 집으로 돌아온 39세의 압델 사타르 알 아비드(Abdel Sattar al-Abid) 씨는 “내가 돌아왔을 때 나의 집은 2미터 높이의 잔해로 뒤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아비드는 지방 당국의 노력은 물을 되찾고 거리를 청소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내 집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청소를 시작했다. 폭탄이 터질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지만 우리는 여기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움직였다”라고 했다.

락까에서 지하디스트는 물러갔지만 전쟁의 잔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AFP/Delil Souleiman)

락까에서 지하디스트는 물러갔지만 전쟁의 잔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사진=AFP/Delil Souleiman)

도시 전체의 주민들도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기간 산업이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돌아온 주민들은 전기 발전기와 트럭으로 운반해 온 물에 의존하고 있다.

40세의 이만 알 파라즈((Iman al-Faraj) 씨는 3주 전에 락까로 돌아왔다. 집 전체에서 오직 작은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8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는 “우리 집은 완전히 파괴됐다. 누가 재건해 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구 시가지 고대 라피카(Rafiqah) 벽 근처의 무함마드 오마르(Mohammad Omar. 25세) 씨는 가스통과 디젤 엔진 플라스틱 주전자를 나란히 배치했다. “돈이 있으면 디젤을 사고, 없으면 나무를 태웁니다. 나무도 구할 수 없으면 스폰지 매트리스나 가구를 태우고요.”라고 말했다.

그의 이웃인 이스마일 오마르(Ismail Omar. 45세)의 집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파괴, 폭탄, 굶주림, 가난뿐입니다. 아무것도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 없습니다”라고 한탄했다.

[윤지언 기자] 2018-01-1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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