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계복음주의교회 영적동맹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다. 그것은 곧, 교회의 최종적 승리가 가까웠지만 동시에 교회가 커다란 위협 앞에 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그 위협을 통과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수많은 도전과 응전의 결합체이지만, 그것의 실체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운동과 그것을 분쇄하려는 어둠의 왕국 사이의 영적 전쟁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즉, 겉으로는 정치, 경제, 종교적 환경이 변화-발전되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변화의 최종적인 목표는 언제나 기독교회의 말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공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까지 전진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 역사는 그 마지막을 달리고 있으며, 사단은 역사를 통해 확보한 자신의 모든 권세를 총동원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한 전 지구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고, 그것의 최종적 목표 역시, 교회의 말살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이 전쟁을 위해 역사와 민족을 초월한 복음주의 교회들의 전지구적인 영적동맹Global Alliance이 절실하다.

1. 사단의 사회 구조적 공격

교회를 향한 사단의 사회 구조적 압박은 신실한 주의 제자들을 각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각성은 역설적으로 복음을 더욱 편만하게 퍼뜨리게 하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전진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수의 믿는 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은 그 압박에 굴복하여 믿음을 저버려 왔으며, 그로 인해 교회의 규모는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말살되기도 하였다. 사단의 이 구조적 공격은 현재 전지구적으로 확장되어 있다.

(1) 이슬람의 확장 : 종교분쟁환경the conflict및 통제환경the control의 구축

현재 이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넓게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7세기 이슬람이 발흥한 이후, 이들의 최대 장악지역은 지중해와 카스피해, 걸프만 인근지역이었다. 이슬람의 이 지역적 구획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하여 5백 여 년가량 유지되었으며,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독립하여 현대 국가체제를 이루면서까지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20세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이슬람 지역의 인구는 이민과 국제경제구조의 인력교류라는 이름으로 전지구적으로 분산되었으며, 세대를 지나면서 높은 출산율을 기반으로 해당국가들 내에서 빠르게 세력을 형성해 가고 있다. 또한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오일달러의 힘을 기반으로 거대자본이 이슬람 포교활동에 투입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전통적인 이슬람세력권을 넘어서 유럽과 아프리카 중부,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지역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은 바야흐로 전지구적 종교로서 역사 그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확장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세력 확장 자체가 아니라, 이슬람이 가진 내재적 속성에 있다. 이슬람은 종교의 형성시기 때부터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지지해 왔고, 실제역사에서도 무력으로 포교했으며, 완성된 경전 내에서조차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허용한 종교인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건설을 시작으로, 현대 문명에서의 이슬람의 폭력성은 정치적 현상으로까지 나타나게 되었으며, 2001년 이후에는 게릴라-테러리즘의 양상으로 무슬림 인구가 편만하게 확장된 그 어느 곳에서나 그 폭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중동지역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와의 오랜 역사적 갈등을 표면화 시키는 과정이 되었고, 또한 이슬람 테러리즘에 대항한 전 세계 국가조직들의 반테러 연대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교갈등’과 ‘통제’는 현 시대를 규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전지구적 변화의 중심에 이슬람이 있다. 지금은 종교갈등이 정치-사회적으로까지 민감하게 대두되어 있는 시대이며, 동시에 각국 정부를 통한 개인에 대한 통제구조가 만들어진 시대이다. 이슬람과의 직접적인 갈등의 문제가 아니다. 전지구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분명 그리스도를 증거할 사명을 가진 교회의 복음증거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고 있으며, 국가의 정부까지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개입하게 되는 경우 그 압박의 강도는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복음증거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자국의 전통종교와 문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기독교를 압박하는 수준을 넘어,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있는 국가에서 이슬람 계열 국가와의 외교적 갈등을 우려하여 자국민의 해외 선교활동 자체를 통제해 가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적극적인 복음증거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소극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국가의 통제 역시 강화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2) 물질문명의 지배 : ‘절대 가치’의 구축

물질문명의 태동과 그 영향력의 확대는 이미 수 천년된 오랜 역사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물질문명의 전지구적인 지배가 완성된 시대이다. 물질문명이란, 인간생활의 가치 기준value을 물리적인 물질의 습득에 두는 광범위한 국가-사회체제를 말한다. 전 세계의 각 국가들은 좋은 경제체제의 구축을 위해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무한 경쟁체제의 돌입해 있다. 물질에 대한 통제력이 곧 권력이 되었으며, 국제정치의 최상층에서부터 시작하여 일반 서민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절대 가치’가 되었다. 아무도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 기초부터 질문할 여유도 없이 물질의 습득을 위해 모든 체제가 작동되고 있다.

더욱이 1970년대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뉴욕과 런던을 권력의 정점으로 하는 금융권력Financial Power의 형성은 물질문명의 지배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즉, 지구상의 물리적 물질들을 화폐와 금융이라는 새로운 가상의 가치체계로 환원시켜서, 결국 주식시장과 대형금융자본의 지배 아래 모든 인간의 노동을 가두어 놓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 구조는 절대로 과거로 회귀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금융권력의 지배는, 각국의 산업구조를 넘어서 각국 정부로까지 확대될 것이며(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되어 있다), 이것은 과연 인간의 삶 전체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전지구의 모든 교회들 역시 이 사회적 구조 아래 있게 되었고, 신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은 거의 기초적인 각성도 없는 채로 물질문명의 거대한 권세 앞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물질문명이라는 세속적 절대 가치에 많은 교회들이 의문을 제기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그것이 만들어놓은 금융의 지배 속에서 영적 음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회들과 신자들이 가지게 된 경제적인 빚debt은 과거로 돌아가기 어려울 만큼 심각하다. 그러나 빚의 양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물질문명에 제시하는 가치기준 자체에 상당수 교회들이 이미 헌신해 있다는 사실이다.

2. 사단의 이데올로기적 공격

이러한 물리적이고도 사회구조적인 사단의 공격은 사실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구조적 공격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교회 내부의 영성이 강하다면 그것은 오히려 교회를 부흥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통해 교회의 ‘영적 내성’을 심각하게 약화시켜왔다. 이것은 사회구조적 공격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1) 계몽주의the Illuminism와 모더니즘the odernism: 기독교의 지식체계화

16-17세기부터 본격화된 유럽의 ‘계몽주의운동’은 인간의 이성을 각성시킨다는 명목 하에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과학과 이성, 합리성을 명제로 내세우는 ‘모더니즘’은 근대교육의 기반이 되었으며, 서양으로부터 시작된 근대교육의 이데올로기는 물질문명의 확산을 매개로 하여 전 세계 교육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 교육에 의해 현대문명의 모든 엘리트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것은 즉각 기독교 신학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리더십의 양산 역시 이러한 교육체계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지식과 합리성으로 해석되지 않는 것은 영적 진리가 아니라는 식의 세속적 계몽주의의 태도는 기독교 신학 속에까지 스며들어, 하늘로부터 시작된 영적 권세와 하나님 나라의 실제적인 도래보다는 복음에 대한 지적 설명에 세계교회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신학적 체계의 정점에 위치한 미국교회를 비롯하여, 그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어왔던 한국교회와 수많은 세계교회 지도자들은 서서히 복음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 곧 영성인 것으로 오해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고대의 영지주의Gnosticism와 같은 무능력한 기독교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이 공격은 실로 광범위해서 세계교회 지도자들의 심각한 영적 침체를 가져왔다. 합리성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처음부터 ‘지식’을 매개로 아담을 유혹했음을 명심하라! 그는 인간의 이성에 빛을 비추어illuminate 지식을 취하고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판단하라고 여전히 유혹하고 있다.

(2) 자유주의 신학Theological Liberalism: 기독교 다원주의의 확산

기독교의 지식체계화와 또 다른 측면의 이데올로기적 공격은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이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냉전체제라는 세계구조와 맞물려 태동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붕괴된 각 국가와 사회 내의 극심한 모순에 직면하면서 기독교 신학 역시 사회문제의 해결에 집중하기 시작하였고(이것은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집중하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혼들을 향한 구원계획을 인간사회의 회복으로 격하시켜버리게 되었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교회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보다 광범위한 곳에 직접 개입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고 교회는 단지 그 중의 일부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상을 확산시켜 온 것이다. 이것은 자연히 예수‘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편협한 종교주의자들로 몰아가게 만들었고, 예수‘도’ 구원의 길이라고 양보하는 것이 관용tolerance의 자세를 가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세속적 ‘관용’은, 표현만 다를 뿐 어느 종교에서나 구원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바로 종교통합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적인 기독교 자유주의 연합조직들은, 의도적으로 매우 복음적인 교회들까지 그들의 네트워크와 연합하도록 장려하면서 종국에는 복음주의권 교회들의 약화를 시도하고 있다. 1974년 로잔언약 이후, 복음주의권 교회들은 이러한 흐름에 반기를 들었지만, 이러한 사상적 기조는 더욱 더 강화되어 왔고, 지금은 심각할 정도로 전 세계 교회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3. 세계복음주의교회들의 영적동맹Global Alliance: ‘남은 자들’의 전지구적 영적 동맹

이러한 광범위하고도 집요한 사단의 전지구적인 총공세 앞에,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더욱 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헌신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해 강력하게 전진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주께서는 항상 ‘남은 자들’(롬 11:1-5)에 대해 말씀하셨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의 좌절에 대해 논하면서,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주께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을 남겨두셨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들고 있는 것이다. 주의 선지자들을 죽여 왔던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도 결국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여 남겨두신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모든 이방족속의 세계교회 속에서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을 믿는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교회 가운데, 이 영적 ‘남은 자들’을 찾아내고 이들과 함께 강력한 영적 동맹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이 이 동맹세력으로 서게 될 것이며, 어떻게 이 동맹을 구축해 갈 것인가?

(1) 복음주의 기조의 강화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만’이 구원의 길임을 선포하고 이것에 모든 사활을 거는 교회와 지도자들을 찾아내야 한다. 모든 종류의 다원주의와 혼합주의를 단호히 거부하고, 이 종교갈등의 시기에 편협해 보이는 이 영적 진리를 고수하는 자들은 모두 함께 연합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곧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테러리스트와 같은 자들처럼 취급받기를 각오하며, 세계평화라는 말로 가장된 종교의 공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타종교인의 사회적 삶을 당연히 우리는 평화롭게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영적인 혼합과 평화를 가장한 사상적 공존은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그 어떤 일보다도 영원한 진리를 선포하고 더더욱 한 영혼, 한 영혼이 그리스도의 피로 돌아오도록 전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1974년 로잔대회에서 선포한 통전적 선교의 기조를 포기하지 않되, 자유주의 연합조직들에 의해 약화되고 있는 이 ‘영원한 복음’(계 14:6)의 부분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이 말씀이 이토록 강하게 우리 심령에 크게 다가 왔던 적은 이전에 없었을 것이다!

(2) 현장성의 회복 : 아랍권 교회의 사례

진정한 복음주의의 강화는 곧 현장성의 회복과 직결되어 있다. 필자는 지금 아랍권 한복판 중에서 그래도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민족 교회를 현장에서 섬기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국교회를 능가할 정도의 많은 컨퍼런스와 탁월한 훈련이 이곳저곳에서 진행되어 온 것을 지난 수개월동안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수많은 국제단체들이 이곳의 교회를 아랍권 전역의 관문이라고 생각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노력한 방식이 대부분 자신들이 가진 탁월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인해 아랍권 전역의 마지막 소망과도 같은 이곳의 교회들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언뜻 보면 많은 지식으로 인해 신실해 보인다. 그러나 이 지식을 가지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돌파한 자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욱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아랍권 지역 중에서 그 어느 지역보다도 강력한 이슬람의 세력에 의해 둘러싸여 있기에, 이들은 그 ‘좋은 지식들’을 가지고서도 거대한 이슬람의 장벽 앞에 좌절하고 자기의 거하던 곳으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곳의 우리 사역팀은 이 한 가지, ‘아랍권 교회들의 현장성 회복!’을 목표로 전력질주하고 있다. 더 이상의 지식으로 이들이 마지막 시대의 강력한 영적 동맹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랍권의 최대교회인 이곳의 교회가 전 아랍지역을 현장으로 삼아 강력한 선교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2천 년 전, 안디옥 교회의 현장이 전 로마제국이었던 것과 같다. 갈라디아에서, 마케도니아에서, 에베소에서, 북부아프리카와 로마반도 전역에서 멈추지 않는 교회개척운동이 일어났던 큰 전제 중 하나는 이 지역 전체가 하나의 언어-문화 환경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1,300년 전 이슬람 군대의 침략을 허락하셨고, 그 결과 토착 언어가 말살되고 아랍어가 현재의 모든 아랍지역을 뒤덮어버리게 되었다. 이 땅의 ‘남은 자들’이었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그들의 언어까지 잃어버리며, 그들 역시 아랍화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그리고 2천 년 전 안디옥 교회가 헬라어로 로마전역을 공략했던 것처럼, 그들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전 아랍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병기이다. 이 전 아랍지역이 이들의 ‘추수현장’으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지식체계화 되어가고 있는 세계교회의 영적쇠퇴를 거슬러 현장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그루터기와 같은 강력한 ‘남은 자들’을 우리는 찾아내고 있고,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이들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현장’에서 이 천국혁명을 시작하셨고, 그분의 제자들로 하여금 이 ‘현장’을 공략하도록 하신 것을 이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 선교를 위한 전략적 협력 : 한국교회의 리더십과 현장교회들

아랍권의 교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세계교회가 이 현장성을 회복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민족적-사회적 은사를 따라 선교를 위한 전략적인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우리 사역팀은 한국교회가 이러한 전략적 협력에 있어 소중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사단의 집요하고도 총체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상황에서, 이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모든 한계를 극복하고 현장을 공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지난 100여 년의 고통의 역사를 돌파해 온 우리 한국교회를 이곳 아랍권으로 보내,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곳의 아랍교회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돕게 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작지만 매우 강력한 선교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청년들이 우리와 연결되고 있고, 이들은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고, 아랍권 복음전도에 헌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랫동안 복음의 전파대신 아랍권 무슬림들과 공존하기를 선택해 왔던 자들이다. 그 전통과 사회적 봉쇄를 스스로 돌파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더욱이 그러한 헌신자들이 발굴된다 하더라도, 이들을 실제로 네트워킹하고 현장의 전도자로까지 인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아쉽지만, 이들에게서 찾아보기가 아직은 어렵다. 언어의 한계를 가진 우리 한국인 사역자들의 이슬람권에서의 경험과 믿음, 조직력을 보고, 이 아랍의 교회들은 어떻게 선교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는지 배우고 있다. 이것이 필자는 마지막 시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게 주신 소중한 선교리더십임을 확신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다. 모든 사역자들이 온 몸으로 이들과 함께 뒹굴며, 이들을 현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의 고백과 증언은 한국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절대적인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각 지역에 하나님의 그루터기들을 남겨두신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 마지막 대추수의 직전에서 모든 현장교회들의 ‘선교부흥’과 그것을 촉발시키는 한국교회의 영적 리더십을 보고 있는 것이다.

4. 결어

이에 우리는 ‘세계복음주의교회들의 영적동맹Global Alliance’를 선포한다! 우리는 주님 오실 때까지 신실한 주의 교회와 주의 제자들을 모든 현장 가운데서 찾아내어,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전진을 이루어낼 것이다.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사단의 전지구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끝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세계교회여 일어날 지어다! 영광의 왕, 우리 주님을 위하여 끝까지 싸울 지어다!

박바울 선교사 / 서울대 의대 졸(M.D.), 동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2002 아프가니스탄 긴급난민구호 의료팀장, 국내선교동원가

[2013-11-1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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