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복음과 율법의 관계 1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1~7]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솔로몬의 ‘격언, 비유담(lv;m;)’이다. 솔로몬은 또한 성전(하나님의 임재처)을 지은 자이니 구약의 성전이 예표하는 성도라는 신약적 성전을 지은 분이 그리스도이시기에 더욱 더 우리는 솔로몬의 잠언을 그리스도의 지혜를 비유하는 격언으로 생각하고 묵상할 일인 것이다. 이때 잠언을 이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절이 있다.

왕상 4:32~34이다.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 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으니 이는 그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이 보낸 자들이더라’

솔로몬의 지혜는 모든 나라에 전파되는 지혜였는데 이는 모든 나라에 전파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표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즉, 잠언은 구약적 복음인 것인데 그 내용을 보라! ‘초목, 짐승, 새, 기어다니는 것, 물고기’ 즉 정확히 첫 창조에 대한 것이며 자연 만물에 대한 지식과 지혜인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말씀이란 첫 창조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렇게 이해할 때 구약과 신약의 관계와 율법과 복음의 관계가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은 세상(첫 창조계)에서 (현세적으로) 잘 되는 것, 높아지는 것을 ‘지혜다, 영광이다, 복이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래서 구약에는 내세에 대한 소망 즉 구원이 없는 것이다. 구약과 율법에 구원이 없는 이유는 구약과 율법에는 그리스도없는 일반은총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이기에 특별은총을 말하는 신약과 복음에만 구원의 기능과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얻으려면 일반은총을 추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특별은총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율법적이다.’ 함은 무엇을 추구하는 열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복음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조차 율법주의로 몰아가는 몰지각이 안타깝다.) 일반은총적이고 현세적 복을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을 율법주의라 칭할 일인 것이다.

2~4절 : 2~3절은 단어들의 나열과 뜻풀기만으로도 잠언이 어떤 글인지, 어떤 목적을 위해 쓰인 글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잠언은 하나님의 구약적 지혜와 훈계를 나타내는 글로 인생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명철’이라 번역된 hn;yBi의 사전적 의미이다)을 의미하며, 이 잠언은 지혜와 올바름과 판단력과 정직함이 무엇인지를 알게하여 올바르고 정직한 일을 결행하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는 교훈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이 잠언이 필요함은 모든 자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이며 이같은 어리석음과 무지는 젊은 자일수록 심한 것이니 젊은 자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지식과 분별력을 주는 잠언인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세상에서 지혜롭다하는 자들이 경험많은 노인들을 지칭함을 알 때 역시나 구약적 지혜는 세상적 지혜, 삶의 지혜, 첫 창조적 지혜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구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혜와 지혜자를 지칭하는 것이니 율법적 지식을 쫓는다 함은 세상적 지식을 쫓다가 허망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율법은 그 지식과 내용의 허망함을 깨닫게하여 신약과 복음을 갈망하게 하고 복음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지금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5~6절 : 말씀을 어느 정도 알고 행하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더 많은 교훈과 지식으로 더 깊고 더 풍성한 말씀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략’이라고 번역된 hl;Buj]T가 ‘지도, 조언’이라는 의미이기에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또한 6절을 통해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우거나 마음에 새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격언과 비유와 수수께끼처럼 알기 어려운 문제와도 같은 내용들을 하나하나 풀어 깨달아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제발 성경을 줄줄 읽어도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신비적이고 편의적 생각을 버리고 풀기 어려운 잠언과 같은 특히 구약 말씀을 풀어 그 의미를 신약적으로 이해하고 드러내기까지 열심히 연구하는 자가 돼야 할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복음이 없는 구약에 복음이라는 빛을 비추어 그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니 부지런히 구약에 신약을 대입하여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복음을 밝혀낼 일인 것이다. 그것이 구약으로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일인 것이다.

7절 : 7절은 하나님을 앎의 시작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가능함을 말하는 것이다. 즉, 누구나 말씀을 보고 들으면 알게되고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로 말씀을 대해야 알 수 있고 풀 수 있고 행할 수가 있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 성경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자는 성경을 조각내고 자신의 뜻으로까지 왜곡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대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대하듯하는 경건한 마음인 것이다.

또한 어리석고 미련한 자는 성경을 멀리하고 큐티하기 싫어하며 조금만 어려워도 깨닫기(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성경이 어렵다 짜증내는 자들이니 그렇게 경박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대가로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공부라는 일반은총을 추구하지 않으면 이 땅에서만 멸시를 당하는 것이지만 말씀이라는 특별은총을 추구하지 않으면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정재식 목사 / 서울경찰청 경목실 청년담당 사역자, ‘평신도사역 이렇게하라’ 저자, 총신대학원 M.Div 수료

 

[입력 2015-05-08 @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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